대를 잇는 장인정신

성마리오농장 마리오자임은 믿을 수 있습니다.

제 1대 김성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김성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그는 29년 전 마산 양덕동 주교좌상당에서 세례를 받은 뒤 교회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농민회 활동을 하며, 카톨릭 신문사 마산지국장, 본당 연령회장, 군종후원회장, 평신도 협의회
    간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활동까지 쉴틈없이 살며 치열한 젊은 날을 보냈다.
  • 농사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농민회에 몸을 담을 수 있을까?
    젊은 시절 넥타이를 매고 농민회 활동을 하던 그의 고민이 결국 귀농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삶의 터전이었던 마산을 떠나 고성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시작했다.
  • 새벽부터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유기농으로 짓겠다고 시작한 농사는 의욕만큼 쉽지않았고 많은 땀을 요구했다.
    땀 흘려 정직한 삶을 꾸리겠다는 신념없이는 가기 힘든 길이었다.
    처음 농장에 정착했을 때 집 왼편의 향로봉에서 100kg이 넘는 산돼지도 메고 내려왔을 정도로 기백이 넘쳤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온 중풍은 그를 크게 변모 시켰다. 농사를 시작한지 10년 만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한번 잔을 들면
    끝장을 보고 마는 음주습관과 무리한 노동이 원인이었다. 그에게 찾아온 병마는 지난 삶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 “아침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수가 없어요. 아프기 전에는 신경이나
    썼나요, 뭐.”
  • 하느님께서는 참 오묘한 분이시라며 먼 산으로 시선을 옮긴다.
  • 6년쯤 지나 야채발효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20여년 전이다.
    카톨릭 농민회에서 활동하던 시절 시위를 하다가 교도소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알게 된 교회 장로의 부친께
    배운 방법을 시험 삼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 야채발효 음료를 만들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매료되었다.
  • 다른 농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성마리오 농장은 농약의 오염에서 벗어난 곳이다.
    오로지 퇴비만으로 농사를 짓는데 사람도 튼튼하게 자라면 아프지 않듯 식물도 튼튼하게 키우면 병충해에도
    강하고 맛도 좋다.
  • 명품이 나오려면 3년~5년 긴 시간 발효시켜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고 편하고 쉽게 하려면 양질의
    야채발효 음료가 나오지 않는다. 오염되지 않는 청정 자연에서 힘든 농사를 짓고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 “그 기간 동안의 기다림으로 인한 공간부족, 재고부담, 노임, 저 수익성을 생각하면 도저히 기업이 할 수 없고, 오직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가 건강증진을 위한 사명감과 장인정신이 있어야만 가능하죠.
    생산자 자신이 직접 중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경험이 명품 야채발효 음료를 생산하는 명인이 될 수 있는 적합한
    조건일 수도 있겠지요.”
  • 그만큼 명품 발효음료의 제작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발효명인 김성호가 마리오자임 제작에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이다.

제 2대 김제준 바오로

  • 성마리오농장 김성호 대표는 처음 성경공부를 할 때 바오로 성인을 매우 존경하여 아들을 낳으면 바오로,
    딸을 낳으면 바울라로 이름을 짓겠다 다짐하였는데, 장남이 바오로 대축일(6/29)에 태어나 이름이
    김바오로가 되었다.
  •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잘 따르고 가장 많이 닮았던 큰 아들 김바오로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가족과 지인들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으며 자랐고, 아버지가 농장을 시작하면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성장하게 되었다.
  • 부친 김성호 대표와 함께 산야초를 채취하여 발효음료를 조금씩 만들어먹곤 했다.
    처음엔 가족건강을 위해서 조금씩 만들던 것이 마리오자임의 시초가 되었다. 농장에서 사슴, 염소를 키우고
    산딸기며 오디를 따먹으며 아버지와 함께 농장을 관리하고 지켜나가던 아들은 어리지만 뚝심강한 일꾼이
    되었다. 밤낮없이 일하던 부친이 쓰러진 사춘기시절, 십대의 어린 나이에 장남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무겁게만 느껴졌고, 유기농 농장을 하던 아버지의 원망도 컸다.
  • 하지만 6개월 남짓 부친을 대신하여 산속에서 왕복 12km 중학교를 걸어다니며 아침저녁으로 농장을
    돌보는데 매진하였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땀의 소중함과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 어릴 적 꿈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답게 교황님이 되는 것이었다.
    부친의 투병을 계기로 성마리오 농장에 사명감을 가지고 부친의 짐을 덜어줄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자연이 베푸는 교훈과 땀의 소중함,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다시한번 되새기며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 비록 길은 달라졌지만 깊은 신앙심이 바탕이 된 사명감과 책임감은 성마리오농장을 앞으로 나아가게하는 힘이자
    원천이다.
  • 유기농 농사꾼이자 발효명인인 김성호 대표의 영향을 받은 그는
  • “땅도 살고 농사꾼도 사는 공동선을 지향 한다.”
  • 자연과 땅이 베풀어주는 만큼 받고, 남는 부분은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자연순환농법으로 바오로만의 유기농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하였다. 성마리오농장은 지난 30여년간 6만평의 농장에 단 한번도 해로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 그는 농장의 식물들과 나무들에게 안부를 묻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
    성마리오 농장에서 신앙심을 지키고 공부하며, 행복한 농부로 평생 사는 것, 그의 소박한 바램이다.
  • 2003년 마리오자임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할때 식품위생 품질관리인 제도가 신설되었다.
    대학에서 식품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식품위생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요건이었는데, 가업을 잇고 성마리오농장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자 대학에서 발효식품학을 전공하고 식품과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들이 순수 유기농업에 매진하기를 원했던 부친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때 반대가 심하셨고 고민 끝에
    주간에는 오로지 성마리오 농장 농업에 매진하고 저녁시간과 여유시간을 통해 공부를 하는 것으로 부친과
    합의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벌써 10년째 열정적으로 주경야독 중이다.
    발효식품학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뒤 석사과정에서는 식물추출물발효음료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한 실용화를
    위한 제품개발 및 연구를 하였고, 이어진 박사과정에서는 식물 및 곡물효소식품과 발효식품 전반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5.08.21 이학박사 학위취득)
  •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항상 책을 가까이 두고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성마리오 농장의 제품력에 대한 밑거름을
    좀더 단단히 다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한다.
  • 주경야독하며 발효식품에 이어 곡물효소를 연구하면서 제품개발을 실행하던 중 국내 산업용 효소 및
    곡물효소시장의 상징적인 인물인 한국발효주식회사 김희철 회장을 만나게 된다.
    효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회사 간 제휴를 통한 공동제품개발을 하게 되었고
    한국발효주식회사의 노하우와 기술력에 유기농 원재료의 이점까지 가미하여 프리미엄 발효효소 유기
    현미콩효소를 출시하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리오자임 성분이 가미된 곡물발효쉐이크 등 신제품
    개발과 성마리오농장의 유기농 재료 생산에 연구와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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